2년 전, 나의 편곡 작품이 유튜브에 세계 초연(?)된 사연 음악인의 삶

작성일: 한국 날짜로 2016년 9월 23일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바로크 음악으로 클래식에 입문한 나는
지금 현재까지도 바로크 음악을 나의 음악 감상의 주된 레퍼토리로 삼고 있다.
한국에서 작곡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 온 나는
2009년부터는 편곡에 눈이 뜨여 몇 백 년 전 J. S. 바흐가 그랬던 것처럼
기존에 있는 바로크 작품들을 다른 편성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도하였었다.
대표적인 작품들로는 두 대의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
호른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일종의 코랄 전주곡, 그리고 트리오 소나타 등이 있다.
* 참조: 나의 유튜브 채널 (http://www.youtube.com/user/askim925)

사실 내가 유튜브 계정을 만든 큰 이유가 바로 이 편곡 작품들의 미디 파일을 공유하기 위함이었다.
주변에 전문 음악인 친구들이 없는 관계상 피날레가 만들어내는 미디 음악들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나는 이것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외장하드가 망가지는 바람에 여태까지 작업한 대학 시절 실기곡,
S 회사에게 넘겨주었던 편곡 작품 등등이 다 날아가 버린 줄만 알았었는데
다행히 데스크탑에 90 퍼센트는 남겨져 있어서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봄에 나는 몇 가지 편곡 작품들을 IMSLP에 업로드하여
지금 현재 독자적인 하나의 작품들로서 등록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다른 여러 가지 일들로 편곡 작업을 중단한 채로 잊고 살았었다.
사실 그동안 여러 곡들을 시도해보았지만 하면 할수록 난관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었다.
하루에 일정한 분량을 정해놓고 한다고 해놓고서는 잘 안 되니까
그 다음날에는 내가 편곡을 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었다.
새로 해야 할 일들마저 생기가 되버리니까
아무튼 더 이상의 가능성은 없겠다 싶어서 깔끔하게 포기를 한 상태였다.
난 한 때 이런 분야에도 미쳤던 사람이었구나 회상하면서....

그러던 와중에 어제 나는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내용인즉, IMSLP에 있는 한 곡을 내가 연주해서 유튜브로 올려도 되겠느냐라는
짧고 간단한 질문이었다. 그래서 무슨 곡을 연주할 건지 물으니까 첨부 파일로 보내줬다.
그건 바로 바흐의 무반주 플룻 파르티타를 하프시코드 솔로로 편곡한 파르티타 중 2악장 꾸랑뜨였다.
내가 IMSLP에 등록한 모든 악보들과 마찬가지로 이 악보에도 하단에는
나의 이름과 허락을 받고 사용할 것이라는 문구, 그리고 나의 이-메일 주소가 명시되어 있다.
제인이라는 이 사람은 그걸 보고 나의 허락을 받고자 메일을 보낸 것이었다.

이건 내가 맨 처음 메일을 받고 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고 실상은 다음과 같다.
딱히 사생활이 노출될 만한 내용들은 없기에
아래에 우리가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을 한국어 버전으로 공개해보도록 하겠다.



제인: 안녕하세요, 애니 씨, 한 프랑스인 구독자가 댓글로 tutorial(한국어로 해석이 안 되는데 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교습용 비디오)을 요청해서 그러는데 IMSLP에서 발견한 당신의 편곡 작품의 사용 여부를 당신으로부터 허락받고 싶어서 이렇게 이-메일을 보냅니다. 아래 링크된 영상의 댓글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애나(나)
: 안녕하세요, 제 작품이 인터넷으로 공개되는 것에 대해 저는 기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 주변에는 음악 친구들이 없어서 제 작품들의 음악적인 진가가 제대로 인식이 되지 못하는 실정이거든요.

유튜브에 제 작품을 연주하고 공유할 수 있습니다 다만 편곡자에 제 이름을 기입하는 걸 잊지 말아 주시고요. 영상이 등록된다면 저에게 꼭 알려주세요.
저에게 물어봐 주신 거에 대해 감사드리고 좋은 결과로 이뤄지길 바랍니다. 행운을 빌어요.

ps: 그리고 여기에 참고하시라고 미디 파일도 보내드려요.



제인: 미디 파일 감사드려요. 제가 답장을 보내는 중에 왔었네요.

저희는 음악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요. 오늘 밤 피아노 선생님과 리사이틀이 예정되어 있거든요.

어디에 사세요? 저희는 미국에 살아요.



애나(나): 저도 미국에 살아요. 하지만 제가 거주하는 주는 뉴욕이나 다른 대도시와는 달리 클래식 음악과는 거리가 멀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전 2007년 한국에서 모든 작곡 학사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작가 지망생으로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께서 저의 음악적인 잠재력을 깨워 주셨네요. 하하.....



제인: 저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거에 대해서는 익숙지가 않습니다. 작품을 즐기길 바라고, 또한 음악을 즐기는 시간을 따로 내시길 바라요. 많은 구독자들 분께서 제게 tutorial 비디오를 요청하는데 저는 악보 없이 연주하거나 작곡하지는 않아요. 뭐 당신은 부업으로 여길지 모르겠지만. :)
BWV 1013 꾸랑뜨 올렸어요. 당신의 기준에 적합하길 바라요.





애나(나):
제인에게,

영상 보고 아래의 영상 내용도 읽었어요. 유튜브 댓글에서 제가 말했듯이 굉장히 아름답게 잘 표현되었고 tutorial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특히 몇 년 동안 사장되었다고 생각된 음악 활동에 관련해서 말이죠. 한때 전 제 자신을 편곡이라는 세계에 푸쉬를 하였었지만 열정이 부족하다던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중단하고 말았지요. 그리고 지금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할 때입니다!! 조만간 편곡 작업을 시도해봐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완벽한 작품과 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 저의 유튜브 아이디와 원본 미디 파일 링크 걸어주신 것도 감사드리고요. 음악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될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좋은 하루들 보내시길 바라고 음악에 관련된 도움이 온라인을 통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부 전합니다.
조지아에서 애나 드림




이후에도 계속 대화가 오고가는 중이지만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이만 줄이기로 한다.




영상과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알 수 있듯이 제인은 은퇴한 수학 교사로서 2009년부터 tutorial 비디오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영상을 만드는 목적은 피아노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로 하여금 올바른 음과 박자 카운팅, 그리고 핑거링을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래서 모든 비디오는 원래의 템포보다 두세 배 정도 늘려서 아주 천천히 연주된다. 사실 이 곡도 원래는 엄청 빨라서 이런 다소 난해한 곡을 하루 만에 어떻게 소화해냈지?라는 의문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상에 대한 목적을 제대로 알고 나서 보니 작품에 나름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보여 집중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세밀함에 나는 감동하였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이것도 연주라고 할 수 있기에 나는 어제 SNS 공유를 통해서 나의 짧은 소감과 함께 세계 초연이라고 칭하였다. 지인들 중 바로크 음악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들이 없기에 비록 많은 공감을 얻어내지는 못했지만 지금 현재까지 이 영상의 조회수가 백 명을 넘어섰고 나름 좋은 평가들을 받고 있어서 나에게도 세계 각국에서 팬이 생겼구나라는 뿌듯함이 생기게 되었다. 이번을 계기로 자만하지 말고 한 곳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들을 잘 감당하며 최선을 다하는 편곡자, 내지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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